UEFA 컵위너스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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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유럽 축구 연맹에 소속된 국가의 FA컵 우승 구단이 진출하는 대회로 1960년부터 1999년까지 개최했다.
1998-99 시즌을 마지막으로 UEFA컵에 흡수되었고, 이후 시즌부터 각 국의 컵 대회 우승팀들이 UEFA컵에 참여하게 되었다.
2. 상세[편집]
초기 대회 명칭은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이었으며 1994-95 시즌부터 UEFA 컵 위너스컵으로 변경했다. 경기 방식은 홈 앤드 어웨이의 토너먼트 방식으로, 결승전은 중립구장에서 단판제로 치렀다. 1972년부터 우승 구단은 유러피언컵 우승 구단과 UEFA 슈퍼컵을 치르기도 했다. 컵 위너스컵 폐지 이후 UEFA컵 우승팀이 대신 슈퍼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첫 시작은 1960년도부터지만, UEFA 에게 인정 받고 확실한 UEFA 주관의 대회가 된것은 1963년도 부터인데, 이는 당시 컵대회가 없는 리그가 유럽에 많았었기 때문이다. 또한 명목상의 권위의 경우 자국 컵대회의 우승팀들이 나왔기 때문에 리그 우승팀들이 진출하던 유러피언컵과 약간 낮거나 사실상 동격인 티어1 급의 대회 였으며 이에 따라 위너스컵의 우승팀과 유러피언컵의 우승팀이 UEFA 슈퍼컵을 치뤘고 실질적으로는 유로피언컵 다음 티어2 급의 대회로 취급받았다. 간혹 UEFA컵이 컵위너스컵보다 위상이 높다고 주장하지만 UEFA에서는 UEFA 슈퍼컵으로 본인들의 위너스컵에 대한 의견을 나타내었고 티켓 우선 순위도 UEFA컵보다 높았던 것으로 보아 위상 측면에서는 UEFA컵보다 상위의 대회로 취급 받았다.
현재와 달리 과거에는 리그보다 컵 대회가 높은 위상을 가지는 경우가 있었고 그로 인해 컵 대회의 상징성과 위상은 지금과 달리 매우 컸다. 그러한 컵 대회의 우승팀끼리의 대회였기에 애초부터 UEFA컵 or 유로파 리그보다 역사적으로나 대회의 위치적으로나 위상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흥행 측면에서는 UEFA컵보다 확실히 부족하였는데 이는 당시 정말 단 몇개의 리그를 제외하면 컵대회는 신생대회 였으며 이벤트전 취급을 했다는점에 기인하는데, 컵대회에 비중을 두던 리그의 경우는, 리그 보다 컵 대회가 먼저 시작되었으며 자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대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영국의 FA컵과 스페인의 코파 델 레이[1] , 그리고 우승시 코케이드를 이듬해 부착할수 있으며 10회 우승하면 구단 앰블럼 상단에 은색별을 달 수 있는 영예를 누릴 수 있어, 리그의 위상에 밀리지 않는 코파 이탈리아 정도 말고는 없었기 때문.[2][3] 거기다가 FA컵 우승만 하면 하부 리그 팀도 진출할 수 있다 보니[4] , 2부리그 팀들의 진출을 원천봉쇄한 [5] UEFA컵에 비해 경기내용이 떨어지고 대진운이 복불복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특히 90년대에 위상 문제가 크게 대두 된다. 유럽의 전후복구가 사실상 완료되고 경제적 여유가 따르게 됨에 따른 컬러TV의 보급 및 유선방송의 등장인데, 80년대 초반즈음 되면 동유럽의 개발도상국이라도 집집 마다 TV 를 구매할 여유정도는 되었으며[6] 데탕트는 물론 공산주의 국가 조차도 특유의 스포츠 과시로 인해 스포츠 대회의 경우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고화질로 틀어줬으며,[7] 이 TV중계가 돈이 된다는걸 깨달은 각국리그협회와 구단에서는 유러피언컵과 UEFA컵에 출장하게 해주는 리그에 더더욱 집중하게 되었는데 과거와는 달리 80년대 후반부터 UEFA컵과 실질적인 위상이 동급으로 취급되던 위너스컵은 90년대 초반부터 UEFA컵에게 위상이 밀리기 시작하고 결국 집에서도 편하게 TV로 경기를 볼수 있는 시대가 됨에 따라 자국내에서도 인기없는 팀들도 많이 나갈 수 있던 위너스컵의 경우는 흥행 뿐만 아니라 컵대회 우승시 UEFA컵을 못나간다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며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시작했다.[8]
이에 따른 흥행문제로 인해 위너스컵의 개편을 시도했지만, 위너스컵의 경우는 컵대회 우승팀 만 나온다는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흥행면에서 뭘 해도 답이 안나와서 결국 폐지하고 UEFA컵에 흡수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는 명실상부한 유러피언컵 다음의 위상을 가진 대회였지만 80년대 후반부터 UEFA컵과 비슷하게 취급되었으며 90년대 초반부터는 확실하게 UEFA컵에 위상이나 흥행 전부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 우승 트로피[편집]
4. 역대 결승전 연혁[편집]
5. 구단별 우승, 준우승[편집]
6. 국가별 우승 횟수[편집]
7. 우승 순서[편집]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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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명칭은 코파 데 수 엑스셀렌시아 엘 헤네랄리시모 지만 편의상 코파 델 레이로 서술.[2] 실제 국가별 우승횟수의 순서도 정확히 이대로 일치한다.[3] 독일의 포칼컵 같은 경우는 역사는 1935년부터로 제법 되지만, 우승팀에게 이탈리아 처럼 딱히 혜택도 없었고, 영국이나 스페인 처럼 자국 내에서 특별한 역사가 있고 위상이 높던것도 아니기 때문에 반쯤 이벤트전 취급이었다. 다만 그에 비해 성적은 꽤 좋은 편인데, 이는 70~80년도의 분데스리가가 그만큼 강력했다는 것을 증명한 것.[4] 대표적인 예로, 72-73 시즌 잉글랜드 FA컵 결승전에서 그 리즈시절의 리즈 유나이티드를 이안 포터필드의 원더골로 꺾고 73-74 시즌 위너스컵에 진출한 선더랜드였다. 결국 16강전에서 스포르팅 리스본을 만나 광탈했다.[5] UEFA컵의 경우는 EFL컵 우승팀이 하부리그로 강등되거나,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되지 못할 경우 PL 차순위 팀이 진출권을 승계하도록 했다.[6] 폴란드의 경우는 1965년에는 고작해서 24%의 가정이 TV를 보유했지만, 1980년에는 무려 90%에 가까운 가정이 TV를 보유하고 있었다.[7] 유튜브 등지에서 볼수있는 70~80년대의 유러피언컵 결승이나 UEFA컵 결승은 당시 TV로는 상당한 고화질이던 330i 로 촬영되어있다.[8] 참고로 흥행 문제가 생긴건 유러피언컵 역시 마찬가지다. 각국당 우승팀 한팀 밖에 못나가던 유러피언컵에 비해 UEFA컵은 국가마다(특히 경제력이 되는 국가들의 경우는) 우승팀에 비해 인지도는 물론 흥행면에서 별로 뒤지지 않는 2~4위팀이 나갈수 있었기 때문. 그래도 유러피언컵의 경우는 리그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은 일단 자국 최고 인기팀인 경우가 대다수며, 일단 리그 우승이라는것 자체가 격이 다르기 때문에 흥행에서 90년대 초중반부터 반쯤은 유럽 대항 이벤트전 취급을 받던 위너스컵 처럼 아예 나가리가 되지는 않았고, 각국의 리그 우승팀들 끼리 유럽 챔피언을 결정짓는 다는 대회의 특성상 명목상이던 실질적이던 최고의 권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강팀들은 반드시 우승하려고 했었다.